삶의 철학| 이기심과 희생의 딜레마, 마르틴부버의 ‘나와 너’를 보며
3년 프로젝트 삶의 철학 둘째날, 마르틴 부버의 《나와 너》를 보며, 이기심과 희생의 딜레마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 책은 관계의 본질을 ‘나와 너(I-Thou)’와 ‘나와 그것(I-It)’이라는 두 근원어로 구분합니다. 책을 읽으며 저는 자연스럽게 가장 가까운 관계, 즉 부모님과 자식 간의 관계를 이 철학적 잣대에 비추어 보게 되었고, 곧 복잡한 감정의 딜레마에 빠져들었습니다.
부버의 ‘나와 너’ 철학은 윤동주의 ‘별’과 김춘수의 ‘꽃’을 통해 가족 관계의 역설을 드러냅니다. 부모의 내리사랑을 넘어, 진정한 ‘올리사랑’으로 나아가는 성찰을 나타냅니다.
1. 이기심과 희생의 딜레마 ‘나와 그것(I-It)’ 관계
부모는 자식에게 조건 없는 헌신으로 ‘내리사랑’을 실천하지만, 자식의 입장에서 부모님을 대하는 태도는 종종 부버가 경고한 ‘나와 그것‘의 관계에 머무릅니다.
제가 정의하는 이기심이란, 부모님의 깊은 사랑을 알면서도, 자신의 편의나 이익, 체면을 우선시하는 행동을 뜻합니다. 예를 들어, 외롭고 연약한 부모님께 연락할 시간이 있음에도 ‘바쁘다’며 미루거나, 더 잘해드릴 수 있는데도 ‘귀찮음’이나 안락함’을 택하는 순간들입니다.
- 부모님과 나의 관계 :
돌아가신 부모님 사랑에 대한 기억은, 내가 할 수 있었음에도 하지 않았던, 이기심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이때 부모는 ‘나의 안정을 돕는 배경’,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안전한 울타리’와 같이 기능적인 존재「그것」로 인식되었던게 아니었을까요? 부모의 존재 자체가 아니라, 부모가 제공하는 역할에 초점이 맞춰지는 것이죠 - 나와 자식의 관계:
반면에 자식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부모 또한 자식을, 「나」의 일부로, 혹은 자신의 희생을 당연하게 받아들일 「그것」으로 인식하고 있지 않나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자식으로서 느끼는 죄책감은 바로 이 「나와 그것」의 관계에서 벗어나 「나와 너」의 진정한 만남을 갈망하는 내면의 목소리일 수 있습니다.

2. 윤동주의’별 헤는 밤’과 김춘수의’꽃’으로 본 희생의 본질
이러한 가족 관계의 역설은 단순한 도덕 규율을 넘어, 인간의 본질적인 존재의 의미와 연결됩니다.
-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
시인은 밤하늘의 수많은 별에 이름을 불러주며 그 존재를 인정합니다. 이는 마치 부모에게 자식이 단순히 ‘자녀’라는 역할을 넘어, 온 존재를 걸고 이름을 불러준, 자아의 의미가 투영된 별과 같습니다..
부모의 희생은 본능적인 사랑을 넘어, 자식이라는 존재에게 자신의 삶의 의미를 투영하고, 그 존재가 ‘꽃’처럼 피어나기를 바라는 존재론적 갈망인 것입니다. - 김춘수 시인의 《꽃》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 꽃이 되었다
부모의 희생은 자식을 세상에서 가장 의미 있는 ‘꽃’으로 피어나게 하려는 존재 부여의 몸짓입니다.
이렇듯 희생에는 이기심이나 계산이 없기에 순수한 ‘내리사랑’이지만, 자식은 그 사랑을 통해 자아를 완성하면서도, 그 희생을 당연시하는 ‘나와 그것’의 딜레마에 빠지는 것입니다.
3. 타인에게 확장되는 희생의 본질: ‘너’의 발견
궁극적으로 ‘희생’의 본질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타인에게까지 확장되기도 합니다. 가족이라는 본능적인 관계가 아닌데도, 어떤 이들은 타인을 위해 자신의 이익과 편의를 기꺼이 포기합니다. 이 마음의 근원은 무엇일까요?
부버는 「나와 너」의 관계가 인간「너」, 자연「너」 그리고 영원한 존재「영원한 너」(즉 신)와 맺어진다고 말했습니다. 타인에게까지 확장되는 희생의 본질은, 결국 모든 존재를 나 자신의 이익을 위한 ‘그것’으로 보지 않고, 온전한 ‘너’로 직면하려는 인간의 근원적인 능력에서 옵니다.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사람은, 그 타인 속에서 보편적인 인간의 가치를 발견하고, 그들의 아픔을 나의 존재와 연결하는 ‘만남’을 경험합니다. 이는 사회적 도덕 규율에 길들여진 행동이라기보다는, 인간이 가진 ‘나와 너’를 인식할 수 있는 본질적 영성이 발현되는 순간인 것입니다.
4. 내리사랑을 넘어 올리사랑으로 삶의 철학: ‘나와 너’의 완성
부모의 희생이 「내리사랑」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생물학적 본능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관계가 일방적인 희생과 일방적인 수혜로만 이어진다면, 그것은 진정한 「나와 너」의 만남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진정한 「나와 너」의 관계는 서로를 온전한 존재로 존중하고, 상대방의 아픔과 기쁨을 온전히 느끼는 데서 비롯됩니다.
자식이 부모의 삶을 단순히 ‘나를 위해 희생한 것’으로 치부하지 않고, 한 개인의 삶으로 존중하며 사랑과 감사의 마음으로 살아갈 때, ‘나와 그것’의 관계는 ‘나와 너’의 관계로 승화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부버가 이야기한 「만남의 순간」이며, 죄책감을 넘어선 진정한 「올리사랑」의 시작이 될 수 있습니다.
마무리
자식은 부모를 「나를 낳고 기른 부모」라는 역할로만 보지 않고, 「한 시대를 힘겹게 살아낸 고유한 인격체(너)」로 마주해야 합니다.
부모의 삶이 지닌 깊이와 고독을 이해하려 노력할 때, 비로소 ‘나와 그것’의 껍질은 깨지고 ‘꽃’ 같은 진정한 만남이 우리 가족 안에서 피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 밤하늘의 별을 헤듯, 가족이라는 이름의 별들을 하나하나 헤아리고, 서로에게 「꽃」이 되어주는 삶의 철학을 실천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